disculpa와 disculpe. 마지막 모음만 다른데, 사전에는 둘 다 “실례합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a와 e의 차이가 사실은 스페인어의 존댓말 시스템 전체를 담고 있어요. 여기를 이해하면 스페인어의 예의 구조가 한 번에 보입니다!
결론 – disculpa는 tú에게, disculpe는 usted에게
먼저 답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disculpe ⇒ 상대를 usted(정중한 “당신”)로 부를 때
둘 다 동사 disculpar(용서하다 · 봐주다)의 명령형입니다. 직역하면 “봐주세요”이고, 실제로는 말을 걸기 전의 “실례합니다” 자리에 씁니다.
같은 문장, 다른 거리
・Disculpe, ¿dónde está la estación?
(실례합니다, 역이 어디인가요? ※ 모르는 사람 · 연장자 · 손님)・Disculpa, ¿dónde está la estación?
(저기, 역이 어디야? ※ 친구 · 또래 · 편한 사이)
다만 스페인어권도 나라와 세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요. 예를 들어 스페인의 젊은 세대는 처음 보는 또래에게도 곧바로 tú를 쓰는 일이 흔합니다. 반대로 멕시코나 콜롬비아에서는 usted를 더 넓게 쓰는 편이에요.
그래도 정중하게 시작해서 상대가 편하게 나오면 맞춰 내려가는 순서가 실패가 없습니다!
왜 a가 e로 바뀌는가 – 명령형의 구조
여기서 조금만 문법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규칙을 알면 disculpar뿐 아니라 모든 동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요.
tú에게 하는 명령형
규칙 동사의 경우, tú에게 하는 긍정 명령은 3인칭 단수 현재형과 같은 모양입니다.
↓ 3인칭 단수 현재형
él disculpa(그가 봐준다)
↓ 그대로 명령형으로
¡Disculpa!(봐줘 = 실례)
usted에게 하는 명령형
usted에게 하는 명령은 조금 다릅니다. 접속법 현재형을 빌려 씁니다.
접속법이라고 하면 어렵게 들리지만, 만드는 방법은 아주 단순해요. -ar 동사는 a를 e로, -er/-ir 동사는 e를 a로 바꾸면 됩니다.
모음을 맞바꾼다
【-ar 동사】a ⇒ e
・disculpa ⇒ disculpe(봐주세요)
・perdona ⇒ perdone(용서하세요)
・espera ⇒ espere(기다리세요)
・pasa ⇒ pase(들어오세요)
【-er / -ir 동사】e ⇒ a
・come ⇒ coma(드세요)
・escribe ⇒ escriba(쓰세요)
usted는 원래 vuestra merced(당신의 자비 = “귀하”)라는 긴 말이 줄어든 거예요. 즉 상대를 직접 “너”라고 부르지 않고, 3인칭으로 돌려서 부르던 예법이 굳어진 겁니다.
한국어에서도 사장님을 “당신”이라고 안 부르고 “사장님께서는”이라고 3인칭처럼 돌려 말하잖아요? 발상이 아주 비슷해요!
한국어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 – 높임이 붙는 위치
여기가 한국어 화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국어는 문장의 끝에서 높낮이를 조절합니다. 어간은 그대로 두고, 뒤에 무엇을 붙이느냐로 예의를 만들어요.
기다리다 ⇒ 기다려 ⇒ 기다려요 ⇒ 기다리십시오
※ “기다리-“는 그대로, 뒤가 계속 길어진다
스페인어는 다릅니다. 뒤에 붙이는 게 아니라 동사 자체를 갈아 끼웁니다.
Espera.(기다려)⇒ Espere.(기다리세요)
※ 뒤에 붙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음 하나가 바뀔 뿐이다
하지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e라는 어미 안에 이미 존대가 들어 있습니다. 한국어의 “-십시오”가 통째로 그 모음 하나에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불안하다고 뒤에 뭔가를 더 붙이려고 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집니다.
다만 스페인어에도 부드럽게 만드는 장치는 있습니다. 어미가 아니라 단어를 덧붙이는 방식이에요.
・Disculpe, por favor.(실례합니다, 부탁드립니다.)
・Disculpe la molestia.(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Disculpe, ¿me podría ayudar?(실례지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 조건법으로 더 부드럽게)
가족을 함께 외우면 편하다
disculpar의 명령형은 상대의 수와 지역에 따라 몇 가지 형태가 더 있습니다. 한 번에 정리해 두겠습니다.
disculpar 명령형 일람
・disculpa ⇒ tú(한 명 · 친근)
・disculpe ⇒ usted(한 명 · 정중)
・disculpen ⇒ ustedes(여러 명 · 중남미에서는 친소 불문)
・disculpad ⇒ vosotros(여러 명 · 친근 · 스페인에서만)
・disculpá ⇒ vos(아르헨티나 · 우루과이 등)
※ “나를”을 붙이면
・discúlpame(tú)/discúlpeme(usted)
그래서 “여기를 강하게 읽으세요”라고 눈에 보이게 표시해 주는 거예요. dis-CUL-pa ⇒ dis-CÚL-pa-me 이렇게요.
perdóname, ayúdame도 전부 같은 이유로 부호가 붙습니다!
disculpa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함정을 짚고 가겠습니다. disculpa는 명령형일 뿐 아니라 여성 명사이기도 합니다.
명사일 때의 뜻은 “사과 · 변명 · 해명”이에요.
명사로서의 disculpa
・Te debo una disculpa.
(너한테 사과해야 할 게 있어.)
・Le pido disculpas por el retraso.
(늦어서 사과드립니다.)
・No quiero disculpas, quiero soluciones.
(변명 말고 해결책을 원해요.)
앞에 una나 las 같은 관사가 붙어 있거나, pedir(구하다)같은 동사의 목적어 자리에 있으면 명사입니다.
반대로 문장 맨 앞에 혼자 툭 나와서 쉼표가 따라오면 명령형이에요. “Disculpa, …”라면 무조건 실례합니다 쪽입니다!
비슷한 표현과의 구분 – perdón · permiso
말을 걸 때 쓰는 표현이 disculpe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자주 헷갈리는 셋을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Perdón. ⇒ 방금 실례했습니다(부딪힘 · 끼어듦 · 되물음)
・Permiso. ⇒ 몸이 지나가겠습니다(사람 사이를 통과 · 방에 들어감)
기억하는 요령은 “입이 나가느냐, 몸이 나가느냐”입니다.
말을 걸고 싶으면 Disculpe, 몸이 지나가야 하면 Permiso.
이 한 줄만 잡아 두면 현지에서 거의 틀리지 않아요!
실전 – 하루 동안 쓰게 되는 순간들
①카페에서 직원을 부른다
⇒ Disculpe, ¿me trae la cuenta?(실례합니다, 계산서 좀 주시겠어요?)
②길에서 어르신께 길을 묻는다
⇒ Disculpe, ¿sabe dónde está el museo?(실례합니다, 박물관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③같은 반 친구에게 펜을 빌린다
⇒ Disculpa, ¿me prestas un boli?(있잖아, 펜 좀 빌려줄래?)
④회의 중 상사에게 질문한다
⇒ Disculpe, ¿puedo hacer una pregunta?(실례합니다,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⑤여러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다
⇒ Disculpen la espera.(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스페인어권 여행에서 가장 먼저 입에 붙여야 할 한마디를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Disculpe를 고르겠어요. 이거 하나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으니까요!
모음 하나로 거리를 조절하는 이 감각, 익숙해지면 꽤 편해요!
disculpe와 disculpa 차이 정리
●disculpa=tú(친근)/disculpe=usted(정중)
●-ar 동사는 a ⇒ e로 바꾸면 usted 명령형이 된다(perdona ⇒ perdone, espera ⇒ espere)
●한국어는 어미로, 스페인어는 동사 활용으로 예의를 표현한다
⇒ Disculpe 한마디로 이미 충분히 정중하다
●복수형은 disculpen(ustedes)/disculpad(vosotros · 스페인)
●disculpa는 명사로 “사과 · 변명”의 뜻도 가진다(una disculpa, pedir disculpas)
●말을 걸면 Disculpe, 몸이 지나가면 Permiso, 이미 실례했으면 Perdón
「Wiktionary – disculpar / disculpe」
「Wikipedia – Spanish verbs」
「Mexperience – When Saying Sorry in Spanish Gets Complicated」